소울 아프리카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며 거슬러서도 아니된다. 사람들은 자연을 대상으로 그 위대함과 초월적인 힘들을 너무도 간단하게 말하곤 한다. 자연의 힘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연의 섭리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보단 그저 남들이 하는 말들을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것에 가까운 그 말들.. 그들의 말처럼 자연의 힘이 거대하고 위대한 것이라면,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도 없고 거슬러서도 안되는 것이라면 한번쯤은 그 힘이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 그 섭리는 어떤 것인지 한번쯤은 멈추어 서서 고민하고 이야기 해보아야 할 것은 아닐까? 자연이 흘러가는 이치에 대해 조금은 관대한 눈을 가지고 지켜볼 여유란 사람들에 없는 것일까?





킬리만자로의 초원, 그리고 소녀
<소울 아프리카>는 킬리만자로의 자연을 집으로 삼고, 초원을 집으로 삼아 살아가는 동물들과 하나가 된 소녀 '파트리샤'와 그녀가 자연을 이해하게 만든 사자 '킹'의 이야기이다. 공원의 관리인인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 거주하며 아주 어린시절부터 동물들과 함께 자라온 아이. 그리고 그 아이가 새끼일때부터 키운 이제는 초원의 왕이 된 사자 '킹', 그 외에도 아직은 사람의 손때가 덜 묻어 자연이 살아있는 그곳만의 사회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책 한권을 웅장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낼만큼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는 휴가차 초원의 공원에 들른 여행객으로 파트리샤와 킹의 모습을 본 후 그들의 신비한 힘과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관계에 매력을 느끼고 남은 여행을 취소하며 그곳에 무기한 머무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누군들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광활한 초원의 수 많은 동물들과 자연스럽게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도 현대의 문명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신기한 일일텐데, 작은 소녀가 맹수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사자와 웃고 떠드는 것도 모자라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장난을 치고 맹수의 왕을 제압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한다니... 처음에는 그저 관찰자에 지나지 않았던 화자는 파트리샤와 킹의 관계를 점점 이해하고 파트리샤가 속한 애매한 경계(인간과 동물, 문명과 미개)가 가져다주는 그녀만의 혼란을 이해하며 그녀와의 우정을 쌓아간다.



파트리샤, 킹, 그리고 인간
<소울 아프리카>는 엄밀히 말하면 소녀와 킹의 관계를 묘사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려는 동화적이고 꿈같기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파트리샤를 이해하는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동물로 대변되는 자연과 문명의 관계에 대해 조금은 철학적이고 조금은 신랄한 비판을 가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어른용 동화랄까?
<소울 아프리카>의 파트리샤는 언제나 자연에 속하려하고 킹과 함께 영원히 존재함으로서 영혼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교육을 받지 못해 미개한 인간으로 남게 될까 두려운 나머지 딸의 영혼을 이해하려 하기 전에 외부에서 세워놓은 기준을 맞춰 그녀가 번듯한 성인으로 자라는 길을 강요한다. 파트리샤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강요와 자신의 희망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겪으며 천진하지만 성숙하고, 따뜻하지만 온화한 여러 모습을 갖춘 소녀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에 자신을 이해하는 가족의 일원인 아빠의 손에 그토록 사랑했던 킹이 죽음을 맞는 모습을 목격하며, 죽음에 대한 상처와 상실감으로 몸부림치며 공원을 떠난다. 누구누구 공주님은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전형적인 동화와는 너무 다른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점은 무엇이었을까?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중간의 경계에서 늘 고민하고 갈등하며 결국에는 상처받고 현실을 선택한 파트리샤.. 어쩌면 파트리샤는 마음으로는 자연과 하나 되어 조화롭게 사는 것이 옳음을 알면서도, 현실의 이익을 위해 문명을 택하고 결과적으로는 자연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갈등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모두의 마음에는 파트리샤가 있고, 살아가기 위해 매일 킹을 죽이는 상처를 받으며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다시 문명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by 린넷 | 2009/09/16 14:20 | 책을 읽어요 | 트랙백 | 덧글(0)

인간의 땅, 중동



각각의 대륙과 각 나라들은 그 곳을 떠올리게 하는 고유한 나름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미국과 아메리카를 떠올리면 개척의 시대와 자유가 떠오르고, 일본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아시아를 떠올리면 그보다는 조금더 정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동양 특유의 느낌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각각의 이미지들은 그곳이 지닌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들이 이어가고 발전시켜나가는 '그곳'만의 문화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가지로 규정될 수 없는 땅

중동이라는 땅의 이름을 들었을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슬람의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고, 끝없이 분쟁과 전쟁이 이어지는 곳, 911테러로 대표되는 테러리즘이 지배하는 조금은 공포스럽고 약간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는 않았을까? 실제로 중동의 여러 국가 중 일부에서는 여전히 이런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으며, 여전히 서방의 여러 국가들은 중동의 여러 단체들을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실정이니 이런 이미지들이 전혀 근거없는 것들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중동의 전부인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보아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인간의 땅, 중동>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가지로는 규정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곳. 많은 나라가 존재하고 그만큼 많은 사상들이 섞여 있으며 다양한 문화들이 뒤엉켜 때로는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융화도 일어나고 있는 곳,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세대가 바뀌고 문화가 발전하며 언제나 앞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그곳이 바로 중동이라는 사실 말이다.



인간의 땅, 인간의 터전. 중동

<인간의 땅, 중동>에서 그리는 중동의 모습은 어느 한쪽에 치우친 단편적이거나 단적인 일면의 모습이 아니다. 끝없는 분쟁이 존재하지만,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쓰는 새로운 조직이 생겨나고, 전통적인 관습 중에서 악습이라 생각되는 것들은 탈피하게 애를 쓰는 다른 여러나라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으며 그들만의 문화를 이어가며 때로는 상상이상의 급진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곳이다. 또한 책 속에서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그들의 아주 사소한 삶들도 담겨 있다.일방적인 시선과 편견으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인간들이 살아가는 그 땅이 바로 중동이라 이름지어진 곳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는 첫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by 린넷 | 2009/09/15 04:34 | 트랙백 | 덧글(0)

증오-테러리스트의 탄생


인간의 감정을 간략하게 표현하는데 우리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기쁘고, 화를 내고, 슬퍼하며, 즐거워하는 것으로 인간이 삶을 통해 경험하는 인생에 대한 감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단지 네가지 글자만으로 설명하느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분화된 다양한 감정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 희노애락의 네개의 가지에서 나뉘어진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를 내고, 미워하며, 분노하고, 증오하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적중 하나로 규정되어진 "怒" 노여움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리고 이 노여움은 특정한 대상을 향한 화나, 미움의 되고 좀 서 세세하게는 질투나 시기등의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나아가 분노와 증오라는 강렬한 감정에 이르기도 한다. 대상을 향한 막연한 분노와 분노 끝의 증오라는 종착역, 바로 이 종착역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펴보아야할 문제인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증오는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증오라는 말과는 조금 다른 영역의 것인데, 타인을 향한 강한 분노의 감정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분노가 정상인의 범주를 넘어서 특정한 행동을 불러 일으키고 이 행동역시 정상적인 것의 기준에서 벗어난 이상행동의 범주에 속하는 결과를 얻어오는 감정, 그것을 바로 증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이 증오에 대해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을 연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증오를 불러오는 다양한 측면의 원인들, 즉 인간사이의 관계부터 애착, 사고장애등의 여러 부분들을 고려함으로서 원인을 분석함과 동시에 증오의 감정을 예방할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 노력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개인의 감정을 넘어선 사회와 전 인류의 숙제, 증오

증오라는 하나의 감정에 대해 이토록 집중하고 많은 연구를 진행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증오가 단순히 개인의 감정문제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그 잠재된 폭력적인 성향이 표출되는 방식이 사회와 국가를 넘어 전 인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카에다나 911테러등은 아직은 우리 개인과는 조금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위협일 수도 있겠으나 비단 테러리스트라는 영역에 국한할 수 없는 것 또한 증오의 문제이며 개인과 사회를 모두 흔들수 있는 몹시도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감정을 시작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증오는 멀리 있는 테러리스트의 문제일 뿐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우리 개인의 문제로도 무시할 수 없는 공포가 될 것이다.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모두 동의한다거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이 책이 제기하는 물음, 바로 증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우리 모두가 오랜 시간와 많은 공을 들여 준비해햐할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by 린넷 | 2009/09/11 05:44 | 책을 읽어요 | 트랙백 | 덧글(0)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


한국의 고전소설들을 공부하다보면 사람이 아인 사물의 의인화를 통하여 세태를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가전체 문학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장르의 이야기들은 국순전이나 국선생전을 비롯하여 공방전 죽부인전 등, 꽤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사람이 아닌 사물을 통해 인간들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소설들에 비해 훨씬 해학적이고 유쾌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이 책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가 시작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역시 이와 비슷하게 고양이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작품 뒤집어 보기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는 앞서 말한대로 나쓰메 소세키라는 일본의 저명한 작가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근간으로 하여 인간의 입장에서 동일한 사건들을 설명하고 해설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아직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 보지 못한 터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는 동일한 사건들이 어떻게 이야기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작품을 직접 쓴 작가의 말을 빌자면 다소 난해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기 전에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를 먼저 접한다면 훨씬 더 유쾌하게 원작을 즐길 수 있을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조금은 더 난해하고 심오한 관점을 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쾌한 탐정놀이.<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는 비교적 아주 유쾌하고 즐거운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양이와 인간이 함께 사는 집에서 고양이에 얽힌 몇몇 사건들을 집의 서생으로 거주하고 있는 화자가 인간의 관점에서 해설하고 있고, 모든 사건들이 굉장히 싱겁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유로 시작되어 마찬가지로 싱거운 결말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무겁지 않고 심오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행동이 도저히 평범하지 못하고 괴짜이다 못해 비범해보이기까지 하는 터라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실소를 금치 못할 만큼 유쾌하기도 하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집의 서생으로 살고 있는 화자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사람들만 출연하기에 다소 비 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유쾌한 이야기가 바로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가 아닐까?

 

좀 더 유쾌하게 작품을 바라보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시대를 비판하고 당시 인물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고양이의 눈을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때문에 아마도 다소 어렵고 고민에 빠지게 하는 글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한다. 이런 작품들을 원작으로 하여 작품을 뒤집고 새로운 관점을 적용하는 것은, 그것이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일수록 더욱 힘겹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까? 원작의 가치를 뛰어넘는 어떤 것을 찾길 원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할것이고 작가는 이런 압박을 쉬이 떨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은 그런 부담에서 떨어져 작품에 즐거움이라는 요소를 더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가치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것 같다. 확실한 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기 전에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혹시나 가지고 있을지 모를 심오함과 깊이를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의 즐거움과 유쾌함을 떠올리며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by 린넷 | 2009/09/08 21:58 | 책 소개 | 트랙백 | 덧글(0)

여유와 자유가 함께 하는 여행의 충실한 안내서가 되어 줄 책


여행이라는 단어는 모든 이들에게 늘 아름다운 추억의 한조각과 한 숨을 몰아쉴 수 있는 휴식을 느끼게 해준다. 이미 어딘가를 다녀온 후의 여행이라면 그 곳에서의 추억과 즐거움을 회상할 수 있게 되고, 아직 다녀오기 전의 여행이라면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을 느껴보리란 기대와 호기심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여행은 그 시작과 끝이 모두 즐겁고 아름다운 단어가 아닐까 싶다.

 

세계 곳곳의 즐거운 정보

<어느 멋진 하루>에는 세계 곳곳의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너무도 아기자기 하게 담겨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다녀온 여행의 추억들을 토대로 작성되어 있기에 너무나 소소하고 작은 내용들까지 세세하게 담겨있는 추억의 모음집이랄까? 덕분에 유명한 명소 위주로 관광안내책자처럼 편집되어진 여행안내서라기 보다는 직접 여행을 다녀왔을때 기억에 남았던 명소부터, 개인적으로 추억을 만들었던 작은 카페나 시장 어귀의 책방까지 다른 여행책자들에서는 빠져 있던 내용들을 접할 수 있다. 또한 각 여행지를 효과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이나, 소요시간, 그리고 주의해야할 것들을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처럼 풀어놓음으로서 더욱 현실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에세이 형식의 이야기들 마지막에는 앞에서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놓아 여행시에는 이 페이지들을 잠깐잠깐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싶었다는.. 또한 여행의 목적지를 이미 정했다면 이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사전조사 자료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나 영화, 드라마등으로 소개함으로서 좀 더 친밀하게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한 안내책자의 역할도 충실하게 하고 있다. 물론 사진작가의 아름다운 여행사진들도 그 곳을 미리 다녀온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만큼 정갈하게 실려 있다.

 

여행전에 읽어보고 밑줄 긋기.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계획을 수립할때 우리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여행사에 들러 여행정보 팜플릿을 뽑아들곤 한다. 그리고 팜플릿 속의 사진과 명소들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친절한 가이드의 손에 이끌려 빡빡한 여행일정을 소화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한다. 물론 본전 뽑겠다는 일념으로 가이드들을 충실하게 따라 다니긴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면 휴식과 여유를 즐기지 못했음이 못내 아쉬운 것은 사실. 만약 당신이 한가롭고 여유롭게 세상의 어느 곳에 잠시 머물다 오고 싶다면 가이드의 손에 이끌려 힘겨운 패키지 여행을 다니는 것 보다는 책 속에 등장하는 영화와 소설을 보며 여행을 준비하고 한가롭게 카페 한구석에서 커피 한잔쯤 마시며 그곳을 둘러보는 자유여행을 준비하는것이 어떨까? 그럴 때 이 책 <아주 멋진 하루>가 아마 충분한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렛츠리뷰

by 린넷 | 2009/09/07 00:17 | 책을 읽어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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